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4 스카이호크 (문단 편집) == 개발사 == 1947년 미 해군은 [[A-1 스카이레이더|A-1]] 스카이레이더를 교체할 [[호위항공모함]]에서 운용이 가능한 쌍발 터보프로펠러기를 더글라스 사에 요구했다. 이를 위해 더글라스 사에서는 A2D 스카이샤크를 설계했는데, 동축반전 프로펠러를 이용한 [[A2D 스카이샤크]]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항공기였지만 엔진의 신뢰성 문제로 말썽이 많았다. A2D가 엔진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는 동안 더글라스 사는 새로운 [[제트기]]의 개념 연구를 시작했다. 새로운 제트기를 설계하던 더글라스 사의 에드워드 하이네만[* [[SBD 돈틀리스]]나 [[BTD 디스트로이어]], [[A-26]] 인베이더, [[A-1 스카이레이더]], [[A-3]] 스카이워리어 등을 설계한 더글라스 사의 설계 책임자로, [[미군]]이 [[제2차 세계 대전]] 무렵과 [[냉전]] 무렵에 운용했던 수많은 걸작 항공기들의 설계를 책임진 인물이었다.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웍스]]의 리더였던 [[켈리 존슨]]과 더불어 당대의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기 기술자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은 1952년 1월 워싱턴의 해군 관계자들 앞에서 항공기의 크기가 커지는 요인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도중 새로운 제트기를 그 기초로 사용하게 된다. 당시 항공기에게 요구되는 성능은 매우 높았던 반면에 제트 엔진의 추력은 충분하지 않았고, 진공관을 이용한 전자기기는 항공기에 탑재가 가능할 정도로 작고 가벼운 크기로 만들기에는 성능과 신뢰성, 효율성 모두가 떨어졌다. 이런 신뢰성이 떨어지는 전자장비로 인해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항공기에 주 장비와 보조 장비, 그리고 예비 장비까지 탑재했는데, 이 때문에 항공기는 점점 커지고 무거워졌으며, 구조적으로도 복잡해졌다. 그러니 당연히 연비가 떨어졌고, 또 떨어지는 연비를 해결하기 위해 연료탱크의 용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항공기는 더욱 크고 무거워졌다. 그러나 항공기가 크고 무거워질수록 공기저항이 커지기 때문에 크기가 커질수록 연료효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러다보니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도 하늘을 넘봤으며, 탑재된 주장비, 보조 장비, 그리고 예비 장비 모두가 정비소요였기 때문에 정비사들은 전장에서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용도로 탑재된 두세 가지 장비를 모두 정비해야 했고, 그렇게 되니 '''덩치가 커져서, 유지보수 비용도 많이 들고, 정비하는데 드는 수고도 훨씬 많이 드는''' 3중크리 작렬! 당연히 가동률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가 크게 드러난 기종 중 하나가 바로 [[F-105]] 썬더치프였다. 여기에서 하이네만이 제안한 설계안은 복잡한 장비들을 최대한 줄여서 신뢰성을 확보했는데, 이는 당시 제트기의 추세였던 복잡한 고성능 항공기에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이런 발상으로 대성공을 거둔 전투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무지막지한 엔진으로 떡장갑을 두른 ~~항공대전차자주포~~[[P-47]]였다.] 이 새로운 설계안은 그 자리에 있던 해군 고위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하이네만은 즉석에서 새 제트기를 기반으로 하는 공격기의 설계를 요청받게 된다. [[파일:external/a4skyhawk.info/gray-heinemann-record-17oct55-press-conf_douglas_john-gray-mod.jpg]] 앞쪽 좌측 끝이 에드워드 하이네만(Edward Henry Heinemann, 1908~1991)/관계자들과 A-4 스카이호크 모형 앞에서. 하이네만은 그 자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약 한 달 뒤 새로운 공격기의 설계안을 가지고 워싱턴에 돌아가 공식적으로 해군에 제작을 제안했다. 제안된 공격기는 해군이 최초로 요구한 쌍발 터보프로펠러기 무게의 절반밖에 안 나갈 정도로 작고, 가볍고, 단순했는데, [[함재기]]지만 날개를 접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하이네만의 설계안을 검토한 해군은 1954년 6월에 시제기를 발주했다. 이 신형 공격기는 이미 설계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해 가을에 목업(mock up) 모델이 나오고 2년만인 1954년에 시제기가 첫 비행을 할 정도로 빠른 진척을 보였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XA4D-1+Skyhawk+137812+3.jpg]] XA4D-1 시제기인 XA4D-1(명명법 통합 이전이라 해군식 명명법을 사용했다.)는 델타익과 전륜식 [[랜딩 기어]](2차대전 당시의 항공기처럼 짧은 뒷바퀴가 달리지 않고 길이가 동일한 앞바퀴가 달린), 그리고 동체 측면의 흡입구 2개에서 흡입한 공기를 이용하는 터보제트 엔진 하나가 동체 뒤쪽에 달린 저익기로, 일반적인 항공기들과는 다르게 수직미익만 동체에 직접 닿는 십자형 [[꼬리날개]]를 탑재했다. 기본 무장으로 각각 100발씩의 탄환을 적재할 수 있는 2정의 [[콜트(총기회사)|콜트]] Mk 12 기관포가 각 날개에 하나씩 탑재되었고, 다양한 폭탄과 로켓, 그리고 미사일을 동체 중앙 아래쪽과 양 날개(초기에는 1개씩이었지만, 나중엔 2개씩으로 늘어난다.)의 하드포인트에 탑재할 수 있었다. A-4 스카이호크는 [[델타익]]을 선택한 덕분에 날개를 접지 않아도 되는 작은 크기임에도 많은 연료를 탑재할 수 있었고, 속도와 기동성도 뛰어났지만 순항효율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A-4 스카이호크의 리딩 에지 슬랫은 중력과 기압에 의해 적당한 속도에서 전개되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덕분에 작동 모터와 스위치를 폐지해 무게를 줄이고 공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주익의 날개보(날개를 지지하며 날개에 작용하는 대부분의 하중을 견디는 부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 착륙장치의 바퀴 부분만이 날개 안에 수납되고 나머지 부분은 날개 밑의 구조물에 수납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날개를 접지 않아도 되는 점 덕분에 주익 구조물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무게를 줄일 수 있었는데, 이는 다른 항공기들이 한 지점의 무게가 늘어나면 다른 지점을 보강하기 위해 무게가 더욱 증가하고, 증가한 무게로 인해 더 강력하고 무거운 엔진을 사용하게 되면서 계속 무게가 증가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과는 달랐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4Cs_VMA-533_refueling.jpg]] A-4 스카이호크 버디 투 버디 급유사진 A-4는 버디 투 버디 공중급유란 개념을 가장 먼저 채용한 항공기였다. A-4 스카이호크 덕분에 전문적인 [[공중급유기]]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는데, 이 점은 외딴 지역에서 작전하거나 소규모 편대로 작전할 때 이득이었다. 또한 작전의 유연성과 공중급유기를 손실하거나 공중급유기가 고장났을 때를 대비할 수 있었지만, 항공모함의 전투기 수를 줄이는 요인이 되었다. 지정된 보급용 A-4는 동체 중앙의 파일런에 급유장비가 달린 대형 연료 탱크를 탑재했다. 출격할 상황이 생기면 이 A-4 스카이호크 급유기가 무장 없이 연료를 가득 채운 다음 가장 먼저 출격하고 곧이어 공격기들이 출격했다. 공격기들은 최대한 무장하고 최대이륙중량까지 연료를 탑재했는데, 이는 연료 탱크 크기에 비하면 적은 양이었기 때문에 이함에 성공하면 일단 급유기에서 연료부터 받았다. 그러면 연료와 무장을 만재한 항공기가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당시 A-4는 외부 연료 탱크를 보통 쌍으로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덕분에 불시착할 상황이 생겨도 동체 전체를 파손시키지 않고 기수만 긁는 정도로 끝내는 게 가능했다. 즉, 연료 탱크 두 개를 스키대처럼 이용해서 불시착을 하게 되면 기수만 땅에 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연료 탱크를 장비하지 않고 작전에 투입되면 그런 거 없다. 또한 후기형의 경우는 날개 양쪽에 쌍으로 달기보다 동체 중앙에 달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